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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허브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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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플라워 작성일 2012-11-14 [17:26] 조회수 555

허브의 역사는 "스파이스의 역사"입니다.

허브는 주로 향신료로 사용되었으며, 항해시대로 막을 연 근대시대는 허브를 얻기 위한 치열한 식민지 쟁탈전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브의 고대역사]
 
허브는 고대에 여러 가지 이용법이 체험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병이나 상처에 달여서 먹거나 외용으로 바르기도 하고 때로는 태워서 연기를 흡입하기도 하였다. 또한 몸에 지니고 있어서 향기를 맡거나 몸에 발라 염색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대에는 불쾌한 냄새와 동물이나 물고기가 썩는 등 나쁜 냄새는 사악한 것으로 여겼고, 달콤하고 상쾌한 싱그러운 향기를 청정한 것, 선한 것으로 믿었다. 따라서 허브는 나쁜 병을 고치고 아픈 것을 물리치는 향기로운 제물로서 부정한 것을 물리쳐 신들을 즐겁게 한다 하여 제사의식의 훈향으로 쓰였던 것이다.

허브의 방부작용을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이라에 이용하였다. 특히 왕후귀족이 죽으면 그 내장을 꺼내 버리고 각종 수지류와 정유, 향유 등 향기로운 향품으로 깨끗이 씻고 시체의 몸에 발라서 부패를 방지 하기 위해 미이라를 만들어 보존해 언제든지 죽은 사람이 되살아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고대 허브의 발전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B.C 1,700년경에 만들어진 바빌론의 함무라비(Hammurabi) 법전에 만약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이 외과의사에게 있다고 인정될 때는 그 수술한 외과의사의 손목을 절단한다고 정의하고 있어서 대개의 의사들이 외과수술을 피하고 <향기로운 식물>을 약으로 써서 치료하게 되어 많은 유용식물들이 개발되는데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B.C 1550년에 쓰인 파피루스에는 약 800여종의 약초가 열거되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의 허브에 대한 지식은 고대 그리스에 계승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B.C 500-400년경 의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400여 종의 약초 치료법을 연구, 기술했는데 지금도 그 절반 이상이 Aromatherapy 이용되고 있다.

고대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이집트 문명이 고대 그리스에서 더욱 찬란한 꽃을 피웠는데 허브나 스파이스(향신료)에 있어서도 고대 그리스인은 지중해연안을 중심으로 자라는 식물을 이용하였다. 이것을 B.C 330년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이 희랍을 정복하고 이집트, 시리아, 터키,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의 인더스강 유역까지 정복하여 동양의 스파이스가 유럽에 전해지게 되었다. 특히 알렉산더대왕의 원정 때 친구인 식물학자를 대동하여 점령지의 많은 허브를 수집하게 했다는 점이다. 수많은 향기로운 허브와 진기한 스파이스는 그들을 황홀하게 했는데, 이것들을 태양광선이 내리 쪼이는 열대 아시아에서 나며 원기회복, 권태감해소, 졸도나 중풍, 독사나 전갈에 물렸을 때의 해독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허브의 중세역사]
 
B.C 510년경 로마제국이 건설되면서 허브도 전성기를 맞아 유럽전역으로 퍼져갔다.
로마제국이 그 세력을 북유럽인 프리타니아까지 영토를 확대해가자 지금의 파리나 런던에 로마군이 주둔하게 되고 남유럽이나 지중해 연안의 허브에다 동양의 열대허브까지 포함하여 전파되어 갔다. 그 중에 내한성이 강한 것은 그곳의 기후풍토, 자연환경에 순응하면서 귀화식물이 되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허브는 수도원이나 성의 정원에 심어져 발전하였다. 고대의 허브는 신화나 전설의 인물뿐만 아니라 실존인물에도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향유의 사치와 낭비의 극을 달렸던 클레오파트라와 네로는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중세의 시작이라고 하는 게르만족의 이동은 허브의 세계에 새로운 전기를 열었다. A.D 4C경에 동부, 북부, 서부로 나뉘어 진출하였는데 원래 미개했던 그들은 중부유럽의 음울하고 한랭다습한 고층습원의 삼림지대에서 수렵과 목축으로 생활하던 민족으로서 그곳은 식용식물 이나 채소, 과일 등이 거의 없다시피한 열악한 자연조건이어서 자연히 식량은 수렵에 의존했으므로 잡은 고기의 방부보존은 중요한 과제였다. 여기에 쓰인 허브나 스파이스의 역할은 어느 지역보다도 중요했고 또 절대적이었다. 그들의 육류중심의 식생활문화가 발달한 것은 이러한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였으며 그 지독하리 만치 나쁜 기후풍토 등 자연을 극복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호전적인 민족성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인에 의해 상품화된 동양의 허브나 스파이스는 십자군, 로마인, 아랍상인들의 손을 거치면서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의 구석구석까지 퍼져갔는데 이때는 약초나 향초의 영역에서 약용채소와 향신료의 역할도 컸던 것을 알 수 있다.
게르만민족의 대이동 후 그들이 새로운 문화에 접하면서 형성된 중세의 문화 속에 허브나 스파이스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가 하는 것은 그들이 항해시대를 열고 식민지획득 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 것이 말해주고 있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중세의 암흑시대 때도 허브만은 그들이 퍼트린 곳에서 쇠퇴하지 않고 성체의 장원이나 수도원에서 약초로서 재배되어 발전해 점차로 일반 민가에서도 가꾸어지게 되어 일상생활에 이용하게 되었고 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굳혔다. 그 당시는 유럽이나 지중해연안, 서남아시아 등의 모든 허브가 식용을 위해 재배되었다.
 
유럽사람들이 허브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던가 하는 것은 콜롬부스가 신대륙 발견 후 그곳으로 이주해간 유럽인들이 가재도구와 함께 허브도 가져가서 재배 이용하여 신대륙에 귀화식물화 된 것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대륙에서 발견한 진기한 식물들은 구대륙 유럽으로 쉬지 않고 보내져 그때까지는 실용목적이던 허브가든이 관상용의 플라워가든이나 채소밭인 키친가든으로 세분화 되었으며 나중에는 식물원인 포타니칼가든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 무렵부터 중세의 풍경식 정원과 기하학적 정원양식이 생겨났다. 이 모두가 허브가 만들어 낸 문화유산들이다. 허브의 전승기는 AD 14~15세기이며 영국의 허브가든을 손꼽을 수 있다.
 
 
[허브의 근대역사]
 
근대의 막을 연 항해시대와 그 뒤를 이어 식민지 획득 경쟁시대를 연 허브의 역사는 바로 스파이스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스파이스의 대표라고 하면 당연히 후추(Pepper)를 꼽는다. 후추는 인도가 원산지로서 어원은 산스크리트어에서 비롯된 것인데, 인도에서는 수천년 전부터 조미료로 후추를 쓰고 있었다. 인도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전해진 후추는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유럽에서는 보석처럼 귀하게 여겼는데 순은제 항아리에 넣어서 소중하게 다루었다. 14-15C의 북방 게르만 사회에서는 세금이나 관세의 지불이나 관료의 급료, 땅의 매매나 임대, 결혼 지참금 등에 후추가 쓰였다. 돈에 곤란을 겪고 있던 독일의 어떤 왕은 왕관을 저당 잡혔었는데 그 저당 잡힌 왕관을 찾는데 후추를 지불했다는 일화도 남아 있다. 후추가 이처럼 귀하고 값있는 물건이었으므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유럽사람들은 막대한 투자와 목숨을 건 모험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후추를 비롯한 여러 가지 스파이스를 찾아 떠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스페인 등 열강의 대 항해는 동양을 지배하는 식민지 획득으로 변하고 뜻밖의 신대륙 발견의 신기원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콜롬보스가 미대륙을 발견하고 스페인 원정대가 멕시코를 식민지화 하면서 미대륙의 원주민 인디언들의 허브와 스파이스에 대한 지식을 배워 새로운 수많은 식물들이 유럽으로 전해졌으며 이 새로운 식물들은 전세계로 퍼져나가 미대륙의 고추가 오늘날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향신료가 되고 있다. 후추는 고추보다 먼저 들어와 있었는데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서 한나라때 들어갔다고 제민요술에 외국 향신료로 소개되어 있고 우리나라는 중국을 거쳐 고려중엽에 송나라에서 들어와 향신료 및 약용으로 쓰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허브를 상업적으로 재배하여 약과 조미료로 상품화시켰다. 종래의 허브나 스파이스의 이용법은 19세기까지 계속되었다. 명나라때 이시진의 본초강목이나 16세기의 우리나라 명의서인 허준의 동의보감은 서양의 본초서에 조금도 손색이 없지만 우리는 풍부한 유용자원을 가까이서 쉽게 접할 수 있어서 병이 나기 전에는 서양사람들처럼 생활 속에 도입하지 못했다. 따라서 약초는 한정된 사람(한의사나 한약처방사)외에는 다루지 못했어도 민간요법으로는 전승되어 왔다. 또 우리나라에도 고대로부터 식생활 문화가 발달해 있어서 약미, 향신료의 이용도 다양했다. 다만 식생활이 농경문화권으로 식물성 식품에 발효 조미하는 식생활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식품재료가 바로 약미채소여서 특별히 약초 외에는 재배채소와 자생산채를 혼용했던 것인데, 서양의 소금과 스파이스로 조미하는 육식문화와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허브의 현대역사]
 
그리스에서 허브의 약리연구가 시작되면서부터 서양에서는 식물성분의 병에 대한 효력의 유무를 연구하면서 분석기술이 발달하여 갖가지 병이나 상처에 듣는 성분들이 분명해지자 그 성분을 합성하려는 연구가 시작되었다.

18C부터 시작된 합성화학공업, 약품 제조공업이 발전하면서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화학의 융성과 공업의 발전이 눈부시게 되어 도시생활의 변모에 크게 작용하게 되어 자연에 바탕한 허브는 서서히 잊혀져 갔다.
 
그러나 20C 후반부터 월남전쟁을 계기로 인간성 회복이 제창되면서 경제 최우선, 과학 만능에서 야기되는 공해 즉, 합성신약, 합성조미료, 합성방부제, 보존제, 첨가제 등에서 파생되는 부작용과 공해 문제 등이 빈발하자 정서의 상실과 반성이 뒤따르게 되고 이에 따라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허브 리바이벌 조류가 싹트게 되었다.

지금은 유럽 각국을 비롯하여 이웃 일본에서도 허브의 재배와 이용의 붐이 왕성하게 형성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물론 허브는 고대에서부터 전승되어 오는 치료목적의 약초의 역할도 크지만 지금은 오히려 요리나 미용, 장식 등 다양한 방법으로 건강증진을 위한 신체적, 정신적 조절기능을 강화하는 역할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병을 이겨 건전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새로이 인식되고 있다
 
 
 
출처 : [기타] http://www.herblive.net/shop/board/view.php?id=herbstory&no=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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